설교자 | 박봉수 목사 |
조회수 | 1653 |
설교일 | 2019-05-19 |
설교 본문 | 골 2:6-8 |
그리스도인으로 일하자 |
그리스도인으로 일하자 (골 2:6-8)
최근 한국사람 중에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을 꼽으라면 방탄소년단(BTS)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ABC 방송보도를 보면 빌보드차트에 1년 동안 세 번이나 1위에 오른 가수는 전설적인 록그룹 비틀즈 이래로 처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방탄소년단의 인기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놀랍습니다. 이 방단소년단이 최근에 발표한 새 앨범의 이름이 ‘맵 오브 더 소울: 페르소나’ (Map of the Soul: Persona)입니다. 이름이 매우 독특합니다. 그리고 이 앨범은 이름에서 보듯이 나름대로 중요한 담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페르소나라는 말은 원래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일컫는 말입니다. 현대에 와서는 정신분석학자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에 의해서 심리학적인 개념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이 페르소나라는 말은 “사회 안에서 주변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본래의 자아의 모습과 다르게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참자아가 아닌 거짓자아의 모습이고, 그래서 참자아를 숨기고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얼굴에 쓴 가면과 같은 것입니다. 방탄소년단은 이 앨범을 통해서 참자아의 모습을 감추고 페르소나 즉 만들어진 가면을 쓰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용기 있게 가면을 벗으라, 참자아의 모습을 되찾고, 참자아의 모습대로 살아가라... 방탄소년단이 전하려고 한 이 메시지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와 너무도 닮았습니다.
골로새서는 바울이 골로새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이 골로새교회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간 머물며 복음을 전할 때 에바브라라는 사람이 예수를 믿고 골로새로 가서 복음을 전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골로새교회는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도 아니고, 아직 한 번도 가본 일이 없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골로새교회가 성장하며 든든히 서가는 중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단들이 교회에 침투해서 교회 안에 영적으로 큰 혼란이 생긴 것입니다. 에바브라는 이 문제를 들고 바울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바울은 로마감옥에 갇힌 상태였습니다. 이제 바울이 이 문제에 대해 답을 하며 에바브라 편에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이 바로 골로새서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을 보면 이단의 영향을 받아서 골로새교인들 가운데 신앙생활에 문제가 생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일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골로새교인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당시 세상풍조를 따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결국 골로새교인들 가운데 본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신의 참모습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일상 속에서 세상사람들 눈에 거슬리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세상에서는 세상사람들 눈에 거슬리지 않는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바로 잡으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잃지 말고 당당하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1차적으로는 골로새교회에 주신 말씀이지만 오늘 한국교회도 깊이 새겨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골로새교회 교인들처럼 오늘 한국교회 교인들에게도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상 속에서 그리고 일터에서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터의 상황 1970년대에 선교신학자 호켄다이크(J. C. Hoekendijk)는 [흩어지는 교회](The Church Inside Out)라는 책을 출판해서 신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이 책에서 기존교회를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동안 교회는 모이는 일과 모여서 하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여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교회는 흩어져서 선교하는 일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힘주어 역설했습니다. 실제로 한국교회는 모이는 일과 모여서 하는 일에 주된 관심을 기울여왔습니다. 교인들도 교회에 나와 은혜 받고, 교회 봉사하는 일에만 신앙적 에너지를 쏟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에 흩어져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일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 속에서 복음을 전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빛이요 소금으로 살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 박해합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려고 할 때 공격해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답게 살지도 못하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이런 일이 생길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요 1:5를 보면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리고 요 15:19-2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이 말씀들은 세상으로 흩어지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은 영적인 어둠으로 뒤 덥혀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영적인 소통이 전혀 될 수 없는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에 관한 이야기, 영적 사건에 대한 그 어떤 말도 제대로 소통할 수 없는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둘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단지 예수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미움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려고 할 때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목사이기 때문에 일터가 교회이고, 주로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래서 세상 속에서 이렇게 미움을 당하거나 박해를 받은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다만 오래전 군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제가 군에 갓 입대한 시절 참 많이 맞았습니다. 당시 군에 군기가 셌고 구타가 많던 시절이지만 심할 정도로 많이 맞았습니다. 그런데 유독 저만 그렇게 많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를 때리는 고참에게 때리는 이유라도 알고 맞자고 했습니다. 그 고참이 하는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기분 나빠서 때린다는 것입니다. 왜 기분 나쁘냐고 물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식사 때 공개적으로 기도하고 먹었고, 자주 열리는 부대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물론 군에서 제공되는 담배도 피우지 않았습니다. 이 고참이 볼 때 제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예수 믿는 티를 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특히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때 앞에서 읽었던 요 15:19-20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온 몸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렇게 영적인 어둠이 짙은 세상 속으로 흩어집니다. 그리고 단지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고, 복음을 전하려 할 때 보이지 않게 또는 대놓고 박해를 받습니다. 그래서 참 많은 성도들이 자신이 예수 믿는다는 사실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일하는 일터는 세상 한 복판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일터에서 영적 어둠의 무거운 짓눌림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답게 살려고 할 때 미움을 받게 되고,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 박해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을 구지 드러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일터사역을 해온 방선기 목사님은 일터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삶이 신앙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할까 염려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주변사람들이 다 아는데 자기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까 염려해서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신앙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혹시 오너나 상사가 불신자여서 단지 믿는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줄까 두려워해서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일하자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6-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서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한 마디로 말하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속에서 페르소나를 벗어던지고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당당하게 일하라는 말씀입니다. 일터에서 페르소나를 벗어던지고 그리스도인답게 일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를 실천해야 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성도들과 교제하고, 교회에서 봉사할 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에서 가족들과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갈 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터에서 불신자들과 함께 일할 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교회 청소년들이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지 않는답니다. 미국 친구들과 어울리며 미국사람처럼 행동하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만해도 미국 청소년들이 한국 2세 청소년들과 차별 없이 함께 놀고 함께 공부도 한답니다. 그런데 대학에 진학한 뒤 달라진답니다. 서서히 자기가 백인 미국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하나둘씩 피부에 와 닿고 심할 경우 인종차별까지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한국계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하고,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자기가 누구인 것을 분명하게 아는 것을 ‘정체성’(Identity)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청소년 시기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다가 서서히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면서 생기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때로는 세상 한 복판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가정에서 그리고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처럼 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처럼 행동할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6절에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골로새교인들은 예수를 주로 고백하며 사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골로새교인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이 정체성은 교회 안에서 예배드릴 때도 분명하게 확인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밖에서 일상을 살아갈 때도 분명하게 확인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일터에서 일할 때도 분명하게 확인되어야 합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확인했다면 이제 그것을 드러내야 합니다. 감추지 말아야 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식사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일터에서 동료들과 함께 식사할 때 혼자서라도 잠깐 기도하고 식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회식자리에 참석했을 때 정중하게 사양할 것은 사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출근을 하게 됐을 때 지혜롭게 양해 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님의 가르침을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 10:16을 보면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세상 속에서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일터신학을 강의하는 김윤희 교수는 여기에서 지혜로우라는 말을 이렇게 예를 들고 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수요일 야근을 하고 잔업정리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수요예배를 가야하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퇴근해 버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의 일까지 맡아야하기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사사건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드러내는 행동에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도 같은 상황을 맞게 됐습니다. 수요일마다 야근을 하자고 정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말없이 따랐습니다. 야근할 때 힘들고 번거로운 일을 도맡았습니다. 그리고 일이 끝날 때 정리하는 일을 자청해서 다른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먼저 퇴근하게 했습니다. 동료들이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을 찾아가서 청했습니다. 야근하는 요일을 목요일로 바꿀 수 없겠느냐고. 그러면서 정직하게 이유를 말했습니다. 사실 자기가 수요예배 찬양대 봉사를 하는데 수요일 야근 때문에 봉사를 하지 못해서 늘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입니다. 사장은 괜찮은데 다른 동료들 생각이 어떤지 물어보자고 했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그렇지 않아도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모두 흔쾌히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특히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낼 때 지혜로워야 합니다. 자칫 자기 스스로는 신앙이 좋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이기적이고 공동체에는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그리스도임을 드러내서 전도의 문을 막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혜롭게 일터에서 덕을 세우며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적인 어둠으로 뒤 덥히고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고 적대시하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야 하고 또 일터에서 일해야 합니다. 피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워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해도 안 됩니다. 당당하게 그리스도인으로 일상을 살아내고 일터에서 일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디에서나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롭게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