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 박봉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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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2019-03-17
설교 본문 요 5:10-17
일, 어떻게 할 것인가?

 

일, 어떻게 할 것인가?

(요 5:10-17)

 

 

   일전에 한 초등학생의 꿈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자신 커서 되고 싶은 것이 건물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놀면서 때 되면 임대료를 또박또박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 아이를 보면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우선 이 아이는 “도대체 일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입니다. 아마도 이 아이에게 일은 그저 돈벌이일 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으로 이 아이는 “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입니다. 아마도 이 아이는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일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를 보면서 한 가지 걱정이 들었습니다. 이 아이도 앞으로 커서 일을 하게 될 텐데 “과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입니다. 분명히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이 아이에게 일은 고통이고 일터는 그야말로 지옥과 같을 텐데 견뎌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입니다.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힘들어 할 것 같아서 염려가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일,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본문은 예수님과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 사이의 논쟁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베데스다 연못에 누워있던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후 유대교 지도자들이 문제를 삼았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들이 안식일에 일을 하는 죄를 범했다고 시비를 걸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저들의 이런 문제제기에 이해하기 힘든 답을 하셨습니다. 바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이유가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처럼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보면, 예수님께서는 하시는 일, 일하시는 목적, 그리고 일하시는 방법까지 다 하나님께서 하신 대로 따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 할 때 그 답이 바로 이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께서 하신 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답을 찾으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가를 보고 따르면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일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일하신 방법을 따른다고 할 때 우리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즐겁게 일하라

   성경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창 1:1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2에서 2:3까지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위해 하신 구체적인 일에 대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속에서 주목할 것인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말씀이 무려 일곱 번이나 나옵니다.

   첫째 날, 빛을 만드시고 ‘좋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 셋째 날, 물과 땅을 분리하시고 ‘좋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10) 그리고 땅에 식물을 만드시고 ‘좋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12) 넷째 날, 해와 달 그리고 별과 같은 천체를 만드시고 ‘좋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18) 다섯째 날, 생물들을 만드시고 ‘좋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20-21) 그리고 여섯째 날, 인간을 만드신 뒤에 ‘심히 좋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신 뒤 그 결과물을 보시고 좋아하셨습니다. 하나하나 지으신 뒤에 한 발 물러나셔서 감상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좋다!’고 감탄하셨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즐겁게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지혜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남다른 지혜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살면서 깨달은 지혜를 전도서에 써놓았습니다. 솔로몬이 전도서에 써놓은 일과 관련된 지혜가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전 2:2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셨지만 죄인에게 노고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일하는 기쁨을 주셨지만 죄인에게는 일하는 고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전 3:22을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 정말 지혜로운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솔로몬이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을 하되 즐겁게 하기를 바라십니다. 일하며 기쁨을 맛보고, 일의 열매를 통해서 보람을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즐겁게 일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즐겁게 일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사람들 중에 즐겁게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왜 일을 즐겁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일을 즐겁게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회길이라는 분이 쓴 [즐겁게 일하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라는 책을 보면 나름대로 그 답을 써놓았습니다. 한 마디로 “일을 사랑하고 일의 주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고, 그리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내가 맡은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경계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버티기를 그만하라!”는 것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처럼 먹고 살자니 그만둘 수 없어서 버티며 일하는 것을 그만하라는 것입니다. 이직을 하고 싶어도 갈 곳이 없어서 버티며 일하는 것을 그만하라는 것입니다. 동료나 상사와의 갈등 때문에 하루하루를 버티며 일하는 것을 그만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버티기 그만하고 생각을 바꾸어서 즐겁게 일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하셨습니다. 당신께서 일의 주인이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시키니까 하는 것이라는 생각, 돈 받고 남의 일을 해 준다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내게 맡겨진 일은 다 내 일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정에서 하는 일이든지, 교회에서 하는 일이든지, 일터에서 하는 일이든지 내가 그 일의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일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서 하셨습니다. 빛을 만들 때서부터 인간을 만드실 때까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지켜보시며 감탄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일을 사랑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보며 감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일의 주인으로 일을 사랑하셨습니다. 결코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일하시며 버티지 않으셨습니다. 일을 즐기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억지로 일하며 버티지 말아야 합니다. 일을 즐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쉬면서 일하라

   성경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면서 쉬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 2:2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쉬셨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만이 인간의 삶에 가치 있고, 쉼은 필요악으로 여깁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쉼은 어쩔 수 없이 필요한데 그것도 일하기 위해서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하나님께서는 쉬지 않으셔도 계속 일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셨습니다. 도대체 왜 쉬셨을까요? 그리고 왜 쉼을 만드시고 쉬라고 명하셨을까요?

 

   종교개혁자 칼뱅은 [기독교강요]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하나님이 오로지 필요를 채우시려고 음식을 지으셨겠는가? 즐겁고 유쾌한 기분을 위해서는 아니겠는가? 옷을 주신 목적 또한 필요에 그치지 않고 단정함과 품위를 지키게 하시려는 게 아니겠는가? 풀과 나무, 과일들 역시 다양한 용도를 넘어 아름다운 생김새와 상쾌한 향기를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꼭 필요한 쓰임새와 별개로 매력적인 구석들을 넣어 만드신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일 외에 쉼도 만드셨습니다. 일로 우리의 필요를 채우셨다면, 쉼으로 우리의 삶을 멋있고 매력적으로 승화시키셨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새로운 세태풍조를 설명해 주는 말이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습니다. 바로 ‘워라밸’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입니다.

   그리고 ‘워라밸 세대’라는 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1988년 이후부터 1994년까지 출생한 세대를 직장생활의 관점에서 규정하는 명칭입니다. 이들은 직장문화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합니다.

 

  한 직장 임원의 푸념 섞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워라밸 세대의 부하직원 때문에 받은 일종의 문화적 충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친구들은 눈치 보지 않고 칼 퇴근합니다. 한 번은 출근시간 이전에 회사에 갔는데 이 친구들 가운데 여럿이 이미 회사에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고도 인사를 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바쁘게 하고 있었습니다. 어깨너머로 보니 자기 업무가 아닙니다. 자기 인스타를 정리하기도 하고, 여행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외국어 공부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출근시간이 됐습니다. 시간을 확인하고는 그제서야 인사를 합니다.”

 

   물론 이런 워라밸 세대에 문제는 있습니다. 선배 세대와의 조화가 되기 힘든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를 위해 동료를 위해 자기희생을 잘 하려하지 않는다는 점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대가 우리에게 새롭게 일깨워주는 것이 있습니다. 쉼의 중요성입니다. 이 쉼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말로만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서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우선 쉼은 일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를 빠르게 풀어낼 수 있게 해 줍니다. 그야말로 패스트 힐링(fast healing)을 하게 해줍니다.

   다음으로 일과 가정, 일과 나 자신의 삶의 균형을 이룰 수 있게 해 줍니다. 그야말로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일을 뛰어넘어 자아실현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일 이외에 자신의 존재 의미를 추구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래서 결국은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일의 효율성을 높여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쉬면서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일과 쉼의 균형, 즉 워라밸을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워라밸’을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거룩한 워라밸이란 우선 쉬면서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자신과의 관계를 깊이 성찰해 보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을 살피면서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의 평안과 건강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가족들을 돌아보고, 이웃을 돌아보고, 교회 공동체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영혼 있게 일하라

   성경은 하나님의 일하시는 독특한 특성 한 가지를 소개해 줍니다. 바로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사 9:7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실 것이라고 예언의 말씀을 전하면서 여호와의 열심이 이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열심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한 마디로 펄펄 끓는 마음, 뜨거운 마음입니다.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펄펄 끓는 마음으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 많은 일들을 하실 때 뜨거운 마음으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열심이라는 말을 우리시대의 말로 바꿔보면 영혼이 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뜨거운 마음 없이 일하는 사람들을 영혼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한 예로 공무원들 가운데 민원을 처리할 때 자기 책임회피만 신경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고들 합니다. 반대로 공무원들 가운데 민원을 처리할 때 자기 일처럼 팔을 걷어부치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민원인의 마음으로 일을 처리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들을 영혼이 있는 공무원이라고 합니다.

   골 3:23을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서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무슨 일을 하든지 영혼 있게 일하라는 말씀입니다.

   ‘메로스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삿 5:23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주민들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사사 드보라 시대 이야기입니다. 가나안 왕 야빈이 20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힐 때 여선지자 드보라가 어머니의 뜨거운 마음으로 나섰습니다. 많은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같은 마음으로 힘을 모았습니다. 결국 저들이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승리를 기념하여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노래 가운데 몇몇 지파와 일부사람들을 저주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저들은 이스라엘의 고통과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전쟁에 수수방관했습니다. 마음을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힘을 모으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메로스입니다. 이 사람은 영혼 없는 사람의 대표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라가 망해 가는데, 주변의 이웃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자기 할 일만을 할 뿐입니다. 나라를 구원하고자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나섰는데 마음으로 응원조차 하지 않습니다. 영혼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영혼 없이 일터에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영혼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대열에 따라 나서면 안 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라는 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영혼있게 일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일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하신 것처럼 하면 됩니다. 즐겁게 일하십시오. 쉬면서 일하십시오. 그리고 영혼 있게 일하십시오. 여러분의 일터가 천국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삶이 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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