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의 성탄
요일 4:7-12
# You Tube 영상[작은 배려]
이 이야기의 제목은 ‘작은 배려’입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던 흑인 선수가 백인 주장의 작은 배려에 힘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 작은 배려가 이 선수를 살렸던 것입니다.
성탄은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아주 특별한 배려 사건입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내어주신 사건입니다. 우리의 딱한 처지를 생각하셔서 그토록 귀한 독생자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그 크신 사랑이 담긴 배려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배려
본문 4:8을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 인간을 최선을 다해 배려하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죄에 대한 배려
우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가장 큰 문제인 죄 문제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살펴보셨습니다.
일전에 TV 뉴스에서 밀엽꾼이 놓은 덫에 걸려 죽어가는 멧돼지를 구출하는 구조대의 모습을 본 일이 있습니다. 멧돼지는 덫에 걸려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지 탈진 상태였고 이 상태로 얼마 더 시간이 지나면 죽고 말 것입니다. 구조대가 안타까운 마음에 구출키로 했습니다. 마취 총을 쏘아 마취시킨 뒤에 덫을 잘라냈습니다. 그리고 풀어주었는데 한 동안 시간이 지난 뒤에 비틀거리며 자기 보금자리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우리 인간은 죄의 덫에 걸려 신음하고 있습니다. 참된 자유를 잃어버리고 죄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타깝게 생각하시고 여러 가지 배려를 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셨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울이 되기 전 사울은 교만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앞 장 서서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심지어 스데반 순교할 때 현장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아끼시던 하나님의 종을 돌로 쳐 무참히 죽이는 바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셔도 벌써 버리셔야 할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참아주셨습니다. 정말 오래 참아주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믿고 난 뒤에 이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죄인 중의 괴수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 중에 있을 때 바로 벌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고전 13장에서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으로 돌봐주셨습니다.
가인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 앞에 범죄 했습니다.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유리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표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가인을 함부로 죽이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죄인이지만 그래도 보호해 주시고 회개하고 돌아오기 전에 멸망을 당하거나 어려운 일을 겪을까봐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그리고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 스스로 이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아셨습니다.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죄 값을 대신 치러주시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보내셔서 대속케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주 특별한 배려입니다. 우리를 위해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죄 없으신 분이 죄인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대신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원래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아주 특별한 배려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뜨거운 사람이 담긴 배려 때문입니다.
삶에 대한 배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 주신 뒤에도 계속해서 우리를 배려하십니다. 다윗은 시 23편에서 이것을 세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선 인도하십니다.
시 23:2에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자가 양을 인도하듯이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선한 길로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 이렇게 복된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복되고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다음으로 지켜주십니다.
시 23:4에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자가 지팡이와 막대기로 양 떼를 지키는 것처럼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지켜주시고 안위해 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 이렇게 평안한 가운데 주께 예배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평안하도록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해 주시고 승리케 하십니다.
시 23:5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목자가 길 잃은 양을 끝까지 찾아오셔서 건져내시는 것처럼 우리가 큰 위험에 빠졌을 지라도 찾아오셔서 결국 우리를 그 위험에서 건져내십니다. 또한 우리가 대적에 공격을 받아 큰 위험에 빠졌을 지라도 우리를 위해 싸우셔서 결국 우리가 승리하게 해 주십니다. 지금까지도 그러셨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그리 하실 것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아주 특별한 배려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배려
먼저 우리는 이제 철이 들어 하나님을 배려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을 배려할 수 있겠습니까?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그 큰 배려를 깨닫고 감사하고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충북대 김용기 교수는 장애를 딛고 대학교수가 되어 장애인들은 물론이고 학생들에게 신앙의 용기와 꿈을 심어주는 분으로 알려진 분입니다. 이분은 매학기 강의를 시작할 때 학생들에게 자신의 어려웠던 삶을 이야기하고 자신을 이 자리에 서게 하신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감사 기도를 드린 후 강의를 시작합니다.
이분은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후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어려서 자기의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아버지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뒤 이분의 인생은 혼자서는 감당키 힘든 장벽 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굴의 정신으로 그 모든 난관들을 극복하고 대학에 입학했고 유학까지 다녀와 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또한 극심한 반대를 극복하고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까지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이렇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힘든 역경을 잘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내가 만들어 놓은 자긍심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살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을 인도하시고 만들어 가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놀랄만한 말을 했습니다. “제게 쩔뚝거림은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였습니다.”
이분은 지금까지 자기의 인생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배려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음을 깨닫고 고백했습니다. 특별히 자기가 장애로 절뚝거리게 됨은 무엇보다도 특별한 하나님의 배려였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며 고백했습니다. 원망거리, 불평거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배려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깨달음과 고백이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주 특별한 배려를 깨닫고 감사를 드리는 것 바로 이것이 작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하나님께 대한 배려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어떤 배려가 있었는지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배려를 깨닫고 고백하고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받은 배려를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의 배려를 받고 사는 우리는 서로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있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동양의 고사성어 가운데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이 있습니다.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해 보라는 말로 타인의 입장에 서서 모든 일을 헤아려 보라는 뜻입니다.
배려는 우선 소극적으로 역지사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나 때문에 누군가가 힘들어하지는 않을 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누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다면 혹시 나 때문은 아닐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어떤 일을 결정하고 나아갈 때 혹이 이 일로 힘들어 할 사람은 없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옳고 떳떳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잘못됨이 없으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옳고 떳떳해도 그 안에 사랑이 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전 10:2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우리가 유익한지 그렇지 않은지 만을 따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만을 따져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덕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덕을 생각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공동체의 덕을 생각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하겠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서 짐을 나눠지고, 아픔과 슬픔을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그들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려고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야 하겠습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이들이 반 친구가 백혈병에 걸려 치료를 받기 위해 학교에 나오지 못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집안이 가난해서 치료 받기가 힘들다는 소식을 듣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저금통을 털고 모금도 했습니다. 저마다 친구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치료 도중에 몸에 괜찮아져서 이 아이가 하루는 학교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머리가 다 빠져서 너무 창피해서 다음날부터 나오지 못했습니다. 아이들 몇이서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어렵더라도 내일 하루만 더 나와 보라고 말했습니다. 이 아이가 학교에 나와 보니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아이들 모두 머리를 깎은 것입니다. 자기가 부끄러워할 까봐 모두 머리를 빡빡 깎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배려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려 그를 위해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행동하는 것 그것이 배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배려는 사람들을 감동시킵니다. 배려는 세상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이번 성탄절은 정말 따뜻한 성탄절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야 하겠습니다.